제목온전한 예배의 회복을 갈망하며2020-05-16 14:00
작성자 Level 8

온전한 예배의 회복을 갈망하며

 

예배 무용 예술가 실레스터 스노우버(Celeste Snowber)몸으로 드리는 기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육체가 갈망하며, 호흡이 찬양할 수 있으며 내장이 생각할 수 있으며

간이 애통할 수 있고 뼈가 선포하고 기뻐하며 전율할 수 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레미야는 고백하며 한탄하기를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렘애2:11)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애통하며 간구하기를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자 누구리요”(35:10), 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그렇게 간절하다면 예배는 더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성도가 우리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헌신이 바로 예배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첫 번째는 바로 예배라고 저는 성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저의 가르침 이전에 성경적 요청이고 신학적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몸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 바로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몸을 입고 역사의 현장에 오셨습니다. 더 이상 말을 보탤 필요가 없어집니다.

우리가 주님이라 부르는 예수께서 친히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요한복음1:14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런데 왜 우리는 몸을 드리는 일을 외면하고, 촉각과 행함을 중요시하지 않게 되었을까요?

이길용 교수는 이렇게 진단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성 중심주의가 판을 치는 바람에 우리는 이해하고, 인식하고, 분별하고, 해석해 내는 것이

인간다움의 정수인 양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논리가 앞서고, 설명이 주를 이루고, 분석이 중심을 차지했다.

이런 경험은 종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종교, 신앙이라는 것도 사실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으로 신앙을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그 사이 점차 우리는 몸의 이야기와 논리를 받아들이는 일에 미숙한 존재가 되어 갔다.”

 

시인은 하나님의 얼마나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갈망하였는지 이렇게 노래하며 간구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84:1~2)”

 

아직도 우리는 예배중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아직도 부자유스러운 상태에서 예배를 드리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자유스럽게 마음껏 찬양하고, 아멘을 외치며 거리낌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유함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체험하는 시간들입니다.

한 부분씩 예배가 회복되어 가고 있는 중에 오늘부터 오후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함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소원하며,

예배의 온전한 회복을 위하여 계속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